1996 애틀랜타 올림픽/축구(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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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축구 종목 중 남자축구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대회 개최지인 애틀랜타가 미국 동부에 위치한 도시라 경기장도 미국 동부에 위치한 경기장에서만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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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3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브라질을 이기고 다음에 헝가리도 이겼으나 금메달팀 나이지리아에게 패해서 8강이 무산되어 올림픽축구 9위로 마감하였다. 4년뒤 올림픽에서 일본은 브라질을 다시 만났고 이번에는 당연히 졌다. 공교롭게도 4년뒤 허정무가 이끄는 한국 올림픽대표팀도 칠레와 모로코를 이기고도 스페인에게 지면서 2승 1패가 되었으나 골득실차로 스페인과 칠레에게 밀려 탈락하고 만다. 나이지리아가 96년 올림픽 금메달을 받았던 것 비슷하게 2000년 올림픽 남자축구에서는 스페인은 은메달, 칠레는 동메달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축구(남자)/결선 토너먼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축구 종목 중 남자축구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대회 개최지인 애틀랜타가 미국 동부에 위치한 도시라 경기장도 미국 동부에 위치한 경기장에서만 치러졌다.
2. 경기장[편집]
- 개최 경기장의 상세 소재지, 명칭, 규모 등은 다음과 같다.
3. 본선 진출국[편집]
- 이번 대회에서도 대륙간 플레이오프가 실시되었다. 개최지 미국이 속한 북중미 2위와 오세아니아 1위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북중미 2위 캐나다와 오세아니아 1위 호주와의 대결에서 호주가 1승 1무로 캐나다를 누르고 3회 연속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계속 미끄러진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4. 조 편성[편집]
4.1. 조 편성 결과[편집]
조추첨은 현지시각 1996년 5월 5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사상 처음으로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올림픽 100주년 대회기도 하고, 여자축구가 처음 정식종목이 된 대회였기 때문에 조추첨식의 규모가 커졌다.
5. 선수 명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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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회 진행[편집]
6.1. 조별리그[편집]
6.1.1. A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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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B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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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C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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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D조[편집]
자세한 내용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축구(남자)/D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U23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브라질을 이기고 다음에 헝가리도 이겼으나 금메달팀 나이지리아에게 패해서 8강이 무산되어 올림픽축구 9위로 마감하였다. 4년뒤 올림픽에서 일본은 브라질을 다시 만났고 이번에는 당연히 졌다. 공교롭게도 4년뒤 허정무가 이끄는 한국 올림픽대표팀도 칠레와 모로코를 이기고도 스페인에게 지면서 2승 1패가 되었으나 골득실차로 스페인과 칠레에게 밀려 탈락하고 만다. 나이지리아가 96년 올림픽 금메달을 받았던 것 비슷하게 2000년 올림픽 남자축구에서는 스페인은 은메달, 칠레는 동메달을 받았다.
6.2. 토너먼트[편집]
6.2.1. 결선 토너먼트[편집]
자세한 내용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축구(남자)/결선 토너먼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최종 순위[편집]
8. 여담[편집]
- 대회 금메달을 차지한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첫 금메달 팀이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공격적이고 보는 맛이 있는 닥공 축구로 많은 팬들을 양산했다. 특히 은완코 카누 같은 선수들은 대회 이후 유럽 무대에서 롱런하는 선수가 되었고, 감독 조 본프레레는 오랜 비주류 생활을 깨고 커리어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맞이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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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림픽 첫 우승[NCAA] A B C D [2] 현재는 철거됨[3] 대회 예선 기준으로 21세, 즉 본선 대회에 23세 이하가 되는 선수들이다.[4] 대회 4위가 스코틀랜드였기 때문에, 단일팀 구성을 하지 않던 당시 영국이 올림픽 출전권을 포기했고, 이로인해 5위에게까지 주어지는 출전권이 6위에게 승계되었다.[5]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 예선은 완전 토너먼트 방식이었다. [6] 최종예선에 진출한 8개국이 말레이시아에 모여서 8강 조별리그 - 4강 토너먼트 형식으로 대회를 치뤘다.[7] 북중미 2위 캐나다와 홈 앤드 어웨이 경기에서 1승 1무, 합계 7-2로 승리했다.[8] 승부차기 승리 및 패배는 무승부로 처리한다.[9] 훗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조 본프레레가 선임되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이력이 바로 이 우승이다. 본프레레는 나이지리아에서처럼 대한민국에서도 3골 먹으면 4골을 넣으면 되는 밸런스를 다소 포기하더라도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다.